Critic's column
이탈리아 축구가 수비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아마 이것일 겁니다 — "그가 뛰는 걸 못 봤다." 파올로 말디니는 그 문장을 25년 동안 실현한 선수였습니다.
1985년 1월, AC 밀란 1군에 데뷔한 그는 2009년 은퇴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다른 유니폼을 입지 않았습니다. 세리에 A 647경기, 25시즌, 한 구단. 말디니에게 이적은 애초에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체사레 말디니가 밀란의 주장이었고 훗날 감독까지 지냈고, 이후 아들 다니엘까지 같은 유니폼을 입었으니까요 — 3대에 걸친 AC 밀란인 셈입니다.
말디니를 수비의 교과서로 부르는 이유는 그가 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태클은 실패의 증거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태클을 해야 한다면, 나는 이미 실수를 한 것이다" — 위치 선정과 타이밍만으로 공격수를 지워버리는 수비, 그게 말디니의 축구였습니다. 옐로카드 없이 시즌을 마치는 일이 드물지 않았고, 그럼에도 밀란 수비의 중심은 늘 그였습니다.
사키의 몰상식할 만큼 조직적인 압박 축구(1989·1990 유러피언컵)부터 카펠로의 실리 축구(1994), 안첼로티의 챔피언스리그 도전(2003·2007)까지 — 말디니는 밀란의 세대교체마다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매번 중심에 있었습니다. 왼쪽 풀백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후반부엔 센터백으로 완전히 자리를 옮겼는데, 두 포지션 모두에서 시대를 대표했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입니다.
가장 잔인하게 그를 기억하는 경기는 아마 2005년 이스탄불일 겁니다. 킥오프 50초 만에 코너킥 세컨드볼을 발리로 걷어차 넣은 선제골 — 당시 챔피언스리그 결승 최단 시간 골이었습니다. 전반전이 끝날 때 밀란은 3-0으로 앞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리버풀의 6분 만의 동점극, 승부차기 패배. 말디니의 커리어에서 가장 완벽했던 순간과 가장 잔인했던 좌절이 같은 90분 안에 있었습니다.
2009년, 마흔 살의 나이로 산시로를 떠나며 그는 유러피언컵 2회(1989·1990)와 챔피언스리그 3회(1994·2003·2007) 우승, 세리에 A 7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밀란은 그의 등번호 3번을 결번으로 지정하되, 아들 중 누군가가 1군에 오면 다시 쓸 수 있다는 조건을 남겨뒀습니다. 다니엘이 같은 클럽에서 데뷔했을 때, 그 조건은 비로소 뜻을 갖게 됐습니다.